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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 be told
※저의 사건과 별개의 사건으로 인한 하소연※ 화가나서 잠이 안온다... 난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이며 왜 그들과 싸워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하는 것 같다. 억울해도 정당하게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타이밍때문에 억울함을 풀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경험자로써 이야기합니다. 피해를 보았다면 그때 그때 증거를 수집하세요. 메모도 좋고, 녹취도 좋고, 타인에게 상담도 좋습니다. 비디오면 더 좋고, 사건에 따라는 DNA가 제일입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베풀고 사세요. 주위 사람들을 챙기고 사세요. 어떤 싸움도 혼자서 하면 질 확률이 높거든요. 함께, 같이 싸우면 이길 확률이 높아요. 그 상대가 국가기관..
한동안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글을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하고 있었답니다......ㅎㅎ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까 주제가 딱히 떠오르는게 없었는데......................... 어제 누군가가 그랬다. "난 주위사람이 좋아서 이겨 낼 수 있었어~ 아니였음 못했을거야" 그래서 떠오른 주제는 '힘'이다. 사건화를 시키고 재판을 하면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고, 유독 더 힘든 날도 있었다.사람한테 상처받기도 하고 기분이 나쁜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비와 좌절을 극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었다.재판을 그만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날도 많았다. 어렵게 시작한 재판이고 힘들게 버티고 있는게 현실이었다.거리상 광주에서 원주는 당일에 가기 힘들어서 재판를 위해 하루전날 서울을 올라가야 했고, 그..
검사측(피해자쪽) 증인이 나를 포함해서 9명이었다.초등학교 당시 같이 운동했던 언니, 동생들 4명과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중학교 체육선생님, 병원원장님, 임상심리사 선생님까지. 증인으로 법정에 선다는 것은 아무리 친분이 있다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경찰조사에는 담당 경사님께서 사실확인서를 써준 언니, 동생들 집으로 찾아가주셔서 감사했지만,법정진술은 다르다. 직접 관할법원으로 와야하고, 날짜와 시간을 조정해서 출석할 수 없다.그리고 판사, 검사, 변호사가 있는 자리에서 선서를 하고 진술을 해야한다. 사실확인서를 써주거나 경찰에게 전화로 진술을 하는거랑은 차원이 다르다.재판이 열리기 전, 경찰이나 검찰 조사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증인들도 법원에 법정증언을 하러 가야한다고 하면 부담스러워한다.이유를 ..
2001, 2002년도에 같이 운동했던 언니, 동생들이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증인이 된다고 해도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냐며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한들 도움이 되겠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이들의 진술에 많은 힘이 실릴 것이라고.그 이유는 나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성폭행"이라는 강간을 당한것이지만, 그들은 "강제추행"이라는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선수들을 자기 옆에 눕혀서 이불을 덮고 몸을 더듬고 만졌다.내가 당한 성추행 중에는 내 윗옷 안으로 손을 넣어서 가슴을 만진 경우도 있었다.(더 심한 성추행도 있는데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나를 제외하더라도 다른 선수들도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2016. 5. 19 페이스북 폭풍 검색, 몇 일전 봐서는 안될 사람을 대면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 2002년 원주로 전학을 간 후로 연락이 끊긴 초등학교 선후배를 찾기 위해 페이스북을 몇 날 몇 일을 검색했다. 2012년에 연락이 닿지 않았던 언니부터, 그 때는 연락을 했지만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 후배들까지. 2012년에 더 용기있게 설득하지 못한것이 아쉬웠기에 이번에 연락이 된다면 용기를 내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 2~3일 검색했나.. 이 사람 저 사람 페이스북을 꼼꼼히 살펴가면서 찾은 끝에..... 동생 세명, 언니 한명과 연락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더 친하게 지냈던 동생과 언니는 내 사건이 아니도라도 너무 찾고 싶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다. 다른 동생 두명도 잘 살고 있고 ..